안 개 - 2020. 5. 18.
나의 이름은 네가 자라면서 희미해져 간다
이름만 가졌던 발치의 어스름이 벌써 산허리를 덮는구나
이맘 때 나는 너와 함께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짐짓 짙은 머리를 비죽 내밀었지만 내 가슴은 너와 구분할 수 없고 허리춤부터 그 아래까지 더 짙은 건 이제 너다
너의 해가 솟으면 정형 없이 부유하던 너도 제법 늠름한 산세를 이루겠지
그럼 나는 잠시 보이지 않을 테지만 정오의 네가
너의 찬란한 초록에 잠겨 있지 않는다면
잠시 뒤를 돌아보다가 어쩌다 나에게까지
네게서 짧게 드리운 나에게까지 그래 어쩌다 눈길을 줄 수도 있겠지
나는 거기서
잠시만 머무르겠다
너의 밤이 오기 전에
나 이전의 숱한 바람처럼 물러나
잊혀지러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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