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었다. 4월이 되면 어렵지 않게 노란 리본을 볼 수 있고, 우리는 그렇게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세월호를 기억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나는 그 때의 우리도 기억한다. 우리는 그 때 "기억하겠다." 또는 "잊지 않겠다." 라고 말했다. 선어말어미 "겠"은 미래에 대한 예상이나 추측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주체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했던 기억하겠다는 말은 단순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 때 우리의 의지는 어떤 구체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다소 막연했기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기 보다는 기억하겠다는 말을 썼는지 모른다. 6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의지는 얼마나 구체적이 되었을까?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 분노는 배신감에 가까웠는데 긴 세월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저마다의 자리에 충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쌓아 왔던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허망할 정도로 부실했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암묵적으로 우리는 믿고 있지 않았던가? 이 틀 속에서 순탄하게 주어진 과정을 밟기만 하면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리라고... 그런데 아니었던 것이다. 안전이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장치조자 작동하지 않았다. 구하지 못했다고 해도 충격인데 구하지 않았다고 보이는 정황들은 우리를 경악케 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변했다. '기억하겠다'고 말했고, 그 막연한 표현을 가슴에, 가방에, 자동차에, 노트북에, 그리고 또 눈에 잘 띄고 가슴에 잘 띄는 어딘가에 노랗게 새겼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고, 같은 자리에서 다르게 살거나, 다르게 살려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극성스럽게 이 시스템을 검토했고, 또 누군가는 사람의 마음을 잃은 이들과 싸웠다.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구체화하면서 무엇보다 우리는 치열하게 반성했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문화를 방치하고 자라게 둔 것을 말이다. 우리의 분노는 상당부분 우리 자신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국은 대단히 잘 대처해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세계가 주목하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에 누군가는 국뽕에 취해 주모를 찾고, 누군가는 정부와 공무원,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있을 때 나는 세월호를 기억한다. '기억하겠다'는 말로 표현했던 우리의 의지는 여기서 이런 식으로도 구체화 되었구나.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시스템의 신속한 대응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국가의 역할 수행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저마다의 삶을 살면서 따로 또 같이 기억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제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작 세월호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해명되지 않아 남겨진 이들은 사투하고 있고, 사람을 도구로 쓰는 문화는 깊숙히 박힌 뿌리를 N번방이니, 박사방이니 하는 괴물들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사익이 대의가 되어 버린 집단이 부끄러움 없이 목소리를 키우고 그 목소리에 힘껏 박수쳐 주는 이들이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아직도 고기처럼 등급이 매겨지고, 청년들은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기억해야 한다. 기억의 힘을,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힘을, 그것이 가져 온 변화를. 또 우리는 반성하며 우리의 방관과 무심함이 키운 이 사회의 가치관을 바꿔가야 한다. 매년 4월 16일이 올 때마다가 아니라 언제나 순간순간마다 나는 기억하겠다, 세월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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