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무기력했다. 사소한 걸로 짜증이 나서 또 다른 사소한 걸로 뾰족한 성질머리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거슬리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눈에 보일 만큼 부글거리고 있는 내 주변으로는
아마 시각화 할 수 있을 만큼의 어두운 오오라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겠지. 그래서 아이들도, 아내도 눈치를 본다. 그들 탓도 아닌데 그렇게 만든 내가 또 싫어서 나는 푹 쓰러지고 싶었다.
왜 무기력할까, 나는, 오늘? 코로나 때문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비까지 느닷없이 내리는 바람에 벼르던 등산도, 하다못해 마당에서 풀 뽑는 것도 할 수 없어서 였을까?
아니면 역시 N번방 때문일까? 사람을 대상화, 수단화하는 사회와 문화를 당연시하면서, '인간소외'라는 말로 그런 문화를 경계하던 목소리도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됐으면 이런 극단적인 일들을 예상은 못했어도 반성은 해야지.
나는 문득 허탈해졌던 게다. 애초에 휴머니즘이란 것이 인간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앳된 아이들을 죄책감 없이 성적으로 학대하고 착취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을 손가락질하기에 여념이 없어 세상을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 반성할 틈도 없는 '인간'을 보며 나는 잠시 '인간'에게서 눈을 돌리고 싶어졌던 게다.
인간을 사랑할 여력을 다시 찾을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가장 큰 삶의 동기라서 그걸 내려 놓으면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짜증이 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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