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장인어른을 보내드리며)
- 2020. 12. 5.
가족의 임종을 기다리며 우리는 병원에서 우리의 건강을 깎는다 흑연처럼 사각거리며 몸 주위로 곱게 쌓이는 우리의 기력은 진혼의 서곡이 될 수 있을까
대충 몸을 구겨 쪽잠을 자다가 차가운 병원 벽에 소스라쳐 깬다 우리는 그렇게 일어나지만 어쩐지 편안해 보이는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나눠 짊어진 불편이 그의 것인가 보다 하고 실없이 서로에게 웃어 보인다
병상 위 아직 남은 검은 머리가 바라보는 사이 흐려져 잿빛만 남고 우리는 버텨야 한다며 회색 밥을 밀어 넣는다 촉촉하게 갓 지은 밥인데 입 안에선 텁텁한 재 맛이 난다 불과 며칠 전 그와 웃으며 먹던 밥은 이것과 무엇이 그리 달랐나
호출을 받고 우리는 피고가 되어 줄 지어 선다 흰 옷을 입은 이가 선고를 내리면 우리는 눈에서 여러 줄기 창살을 내려 그를 우리 안에 종신토록 가둔다 입에서 가슴에서 손에서 족쇄같은 관과 줄들을 풀 때 우리가 들었던 그가 뱉은 큰 숨과 이제 속 시원타는 목소리는 그래서 우리 안에서 울려 나온다
굴뚝 위로 검은 것을 날려버리기 전에 그의 곁에 서서 우리는 더 이상 쥐지 않는 아직 뜨끈한 그의 손을 그러쥔다 그 때 우리는 그의 하얀 입김을 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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