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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어의 된소리가 갖는 진실성2021-01-28 16:38
작성자 Level 10

한때 국립국어원에서 자장면이 짜장면의 올바른 표기라고 했던 적이 있다. 표준어라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건 정말 선 넘었다고 생각해서 분개한 적이 있다.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사람을 성마르게 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언어가 문화에, 문화가 언어에 상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할 것이지 불확실하고 치우친 판단으로 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전체를 억지로 바꾸기 위해 사용해선 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그것을 '교화'라고 인식하고 있는 그 오만함이 나는 징글징글하게 싫다. 짜장면을 이야기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짜장면은 결국 2011년에 복수표준어로 인정되게 된다. 안도현 시인도 말했지만 우리 나라에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 파는 집이 어디 있나? 자장면을 파는 집은 어쩐지 싱겁고 맛도 없을 것만 같다. 된소리 "짜'에는 짜장면의 맛이 담겨 있다. 


어쩌다 유튜브에서 노라조의 '형'을 듣게 되었다. 어쩌다 듣게 된 건데 요즘 힘이 들었는지 울컥해서 여러 번 듣고 말았다. 듣다 보니 귀에 걸리는 가사가 있다.


"바람이 널 흔들고 소나기 널 적셔도 / 살아야 갚지 않겠니"  

"세상이 널 뒤통수쳐도 / 소주 한잔에 타서 털어버려"


노라조는 이 두 구절을 소나기가 아니라 "쏘나기"로, 소주가 아니라 "쏘주"로 발음한다. 황순원 작가 덕분인지 소나기는 어쩐지 서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겪는 고난들을 상징하려면 역시 "쏘나기"가 제격이고 힘든 걸 털어 내기 위해서는 소주 따위로는 충분치 않다. "쏘주"나 "쐬주" 정도는 되어야지.

물론 소나기와 소주가 표준어이고 발음도 [소나기]와 [소주]가 표준 발음이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발음해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다. 같이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사람은 어쩐지 덜 힘든 것만 같다. [자장면]을 먹자는 사람은 어쩐지 나와 같은 서민이 아닌 것만 같은 것이다.

된소리에는 진실성이 있다. 모든 된소리가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된소리가 아니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천박하게 만들고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은 된소리가 아니다. '존나 병신같은 게'라는 말 어디에 된소리가 있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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