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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여정의 도중2020-03-18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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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evel 10

    여정의 도중

                    - 2017. 7. 6.


아가,
그 짐 들지 마라
가까이야 말할 것도 없고
멀면 먼 대로
길 위에선 걸친 옷도 무겁다

매캐한 검정머리 우거진 육림을 떠나
새 우는 소리 제법 들리는 호젓한
산길에 들어서서
이끼 없는 바위 동굴 하나 찾으면
반드시 비는 내리고야 만다
무겁지 않은 돌맹이 몇 개
마른 나무 한 아름 주워다가
해처럼
동그랗게 불을 지피고
젖어드는 초록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손님이 같이 불을 쬐고 있다
 
그는
나 닮은 친구의 얼굴로 말을 걸고
연인처럼 내 곁에 누웠다가
산신의 모습으로 
빈 종이 둘둘 말아 붓과 함께 건넨다

아늑하고 어두운 굴에서
종이를 펴고 밤 길을 그려라
손님이 가고 나면
돌부리 많은 그 길 걸어야 하리니
달아,
부디 잠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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