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도중 - 2017. 7. 6.
아가, 그 짐 들지 마라 가까이야 말할 것도 없고 멀면 먼 대로 길 위에선 걸친 옷도 무겁다
매캐한 검정머리 우거진 육림을 떠나 새 우는 소리 제법 들리는 호젓한 산길에 들어서서 이끼 없는 바위 동굴 하나 찾으면 반드시 비는 내리고야 만다 무겁지 않은 돌맹이 몇 개 마른 나무 한 아름 주워다가 해처럼 동그랗게 불을 지피고 젖어드는 초록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손님이 같이 불을 쬐고 있다 그는 나 닮은 친구의 얼굴로 말을 걸고 연인처럼 내 곁에 누웠다가 산신의 모습으로 빈 종이 둘둘 말아 붓과 함께 건넨다
아늑하고 어두운 굴에서 종이를 펴고 밤 길을 그려라 손님이 가고 나면 돌부리 많은 그 길 걸어야 하리니 달아, 부디 잠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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