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제목청소2020-07-03 23:11
작성자 Level 10

오늘은 명왕성 방문자 기록부 한 면이 꽉 찰 만큼 아이들이 다녀갔다.

사무실에 앉아서 이태원 클래스 정주행을 하느라 덜 살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마감할 때 보니까 이곳저곳 엉망이다.

빽다방 플라스틱 컵이 셀 한쪽에 고이 놓여 있고, 슬리퍼는 도대체 몇 명이 놓고 간 건지 셀 수도 없고,

어디에 붙였던 건지 모를 밴드가 구겨져 던져져 있고,

결정적으로 싱크대엔 짜파게티 먹고 설거지 하지 않은 편수냄비가 젓가락 한 쌍과 함께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치우는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구례에서 비슷한 일로 속상해 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성자처럼, 현자처럼 그럴싸하게 잘난척하며 글을 보냈던 덕분인지,

혹은 문득 떠오른 장인어른의 한마디 때문인지.

그냥 별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치웠다.


그래.

이런 일을 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청소년을 대할 때 성인 대하듯 존중과 예의를 갖추되

마음 한 켠에서는 아직 더 배워야 하는 이의 미성숙함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린 사람들이지만 책임을 배워 가리라 기대하면서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을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가 무심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태도에 야속할 수도 있다.

그럼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해도 좋고, 기회가 된다면 그들에게 솔직히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혼내거나 가르치려 드는 게 당연해선 안된다. 사회인이 사회인에게 전달하듯이 조심스레 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어 공간의 목적이었던 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선 안된다.

성숙한 인격만을 편애하는 것은 휴머니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