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 2018. 4. 28.
1976년생인 나는 1980년대를 어린 시절로 기억한다.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용기에 대한 공감보다는 내 집에 들어온 북한군의 총구를 상상하며 떨었고, 똘이장군을 보면서 저 선 너머의
사람들을 연민없이 증오할 수 있었다. 실향민도 아니면서 이산가족찾기를 TV로 보며 울었고, 우리의 소원은 의심없이 통일이었다.
이웅평 소령은 한낮에 영공을 넘어와서 부모님이 일하러 가신 새 우리 삼남매는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을 듣고 안방에 모여 울먹였다.
전쟁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겪은 멀지 않은 현실이어서 전해들은 처참함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은 심심찮게 들려 오는 북의 도발
소식으로 환기되곤 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휴전 중인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무감각한 일상이 되었다. 남북간의 긴장 고조가 뉴스에 나올 때면 뒷산에 숨어 들어갈 생각을 이따금 하긴 했으나 보통은 그러다
또 말겠거니 하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러다 말았다.
입대를 하고 처음 총을 쏴
보고서야 새삼 내가 적과 대치중인 휴전국에 살고 있음을 인식했고, 가볍게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내가 누군가를, 누군가가 나를
끔찍하게 고통스럽게 만들거나 영영 세상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내 전쟁보다 내무생활이
두려워졌고, 얼마 후에는 무사히 전역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져서 총기가 비치된 공간에서 잠을 자면서도 전쟁을 상상하지
않았다. 경계태세가 발동되기라도 하면 그저 고단하고 귀찮았을 뿐이었다.
전역을
하고 삶을 꾸려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흐릿한 위기의식도 어딘가에 묻어 버리고, 세상을 좀 알만하다 싶어서 단호하게 혀를 놀리곤
했다. 전쟁은 권력자들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잃을 게 많은 저들은 위기를 조장할 뿐이지 정작 전쟁이 나서 그들이 가진 걸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감수할 리 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나는 휴전국인 한반도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많은 나라들이 훨씬
위기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나는
어린시절을 빼고는 정말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심히 살고 있었을까? 휴전국이라는 상황은 공기처럼 익숙해져서 하나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왜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 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그렇게 설레며 기대하고
기다렸던 걸까? 판문점 선언에서 기어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라는 문구를 찾으려고 빠르게 다른 글귀를 넘긴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정치적, 외교적으로 비핵화 합의는 큰 이슈였고, 문화 및 경제적 협력 문제나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의 연결은 실리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는데, 나는, 적어도 나는 '종전 선언'을 보고서야 가슴이 울컥했다. 우리나라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무서워서 어찌 사느냐고 했을 때 코웃음을 쳤지만, 아마 나는 전쟁이 언제나 무서웠던가 보다. 80년대에 전쟁을 두려워하던 그
어린이가 아직 매달려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내 전면에 나올 때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가 보다. 이제 나는 이 한반도의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는 순간을 조급하게 기다린다. 그 선언의 순간에 어쩌면 나처럼 전쟁이 두려운 아이를 안고 사는 많은 한국인들은 그 아이를 달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진짜 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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