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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그랜드캐년2020-03-1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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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evel 10
    그랜드캐년
                                 - 2016. 10. 13.

연신 코를 훔치며
산 아래 불꺼진 집 마당에 서서
무한과
별들을
올려다 보다가
허연 김을 터뜨려 나는 말한다

그랜드캐년에 가고 싶다

인류만큼이나 자라지 못한 왜소한 아이는
상상에 짓눌려 죽을 뻔한 적이 없었다
닿지 않는 곳에 자리잡은 거대함들이
어쩐지 품을만해 보여서
제 몸에 비추어 실감해야 한다, 그랜드캐년

거기에 가면, 가기만 하면
단단히 실재하는 계곡의 절벽 아래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걸으며
나의 덧없음이
살갗에 소름으로 새겨질 것 같다
나의 찰나도 존재한다는 착각이
깨질 것도 같다
손에 쥐고 온 모래를 슬쩍 흘려 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가고 싶다, 그랜드캐년
말하고
불꺼진 집에 들어선다
야속한 현관등이 자동으로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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