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제목자택연금2020-09-17 21:34
작성자 Level 10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고, 동선도 겹치지 않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최소한의 외출만 하면서 살고 있다보니 하루하루 답답함과 우울이 쌓여 간다.

아이들은 월요일과 화요일만 학교를 가기 때문에,

학교 다녀온 이후, 그리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나머지 5일은

집에서 밥을 먹이고, 온라인 수업을 잘 듣는지 챙겨야 한다.

가을인데 비도 잦아서 밖에 나가 운동을 시킬 수도 없으니 내내 집에 있는 아이들은

안방을 점령하고서 컴퓨터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뭔가 기획하거나, 새로운 걸 들여다 볼 때

PC를 주로 이용하는 나로서는 종일 내 자리를 잃은 느낌이 든다.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 엄마가 와도, 아니 엄마가 와서 아이들은 더 부산스럽고 신나게

안방을 오가며 떠들며 내게 차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게 아이들 본성이니 그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함께 갇혀 있는 환경 탓이지만

그것을 안다고 종일 편안하지 못한 나의 신경이 너그러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고단하게 일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매일 하소연을 하고,

잘 시간 다 되어 안방을 침입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낸다.

그렇게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도무지 성장한 것 같지 않아 경멸스러워서

나는 또 한참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집안 일은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참아낸다던 말은

또 결국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나의 허영일 뿐이었나 보다.

더 겸손하고 관대한 사람이고 싶어서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여기서 이렇게 닳아가고 있는, 바스라져 가는,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 그냥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